고백하건데, 어릴 적 나는 민영화의 지지자.. 아니 신봉자였다.
당신의 손자에게 항상 "약게 살아라" "눈치있게 살아라"라고 조언을 하셨던 할머니께서는, 평소 소신과는 달리 (어쩌면 이 일 때문에 그런 소신이 생긴 건지 모르겠지만) 한국전쟁 당시 부역을 했던 혐의를 갖고 계셨고, 그 때문에 우리 집에 할머니 께서 주민등록 거주지 기록을 가지고 있는 동안 관할 경찰서의 감시를 받는 상황이었다 (무슨 드라마에나 나오는 설정같지만.. 정말이다. 우리 가정은 계속 관할서의 "감시"를 받았고, 정기적으로 할머니의 동향에 대해 보고를 요청하는 전화를 받았다. 행정구역 변화로 관할이 바뀌면 또 다른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정말이지 여든이 다 되어가는 노인네의 동향을 감시하는데 시간을 낭비하는데 우리 세금이 쓰인다는 것에 열불이 터졌고, 분단 현실을 이용해서 정권연장을 하는 집권층을 비롯해서 모든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인간들이 경멸스러웠다. 저게 다 공무원이 철밥통이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 몇 살인지 모르겠는데, 주민등록증을 만들러 동사무소에 갔던 날이었다. 그러니까 아직 노태우 정권 때였겠지. 마침 나 보다 먼저 온 또래의 여학생이 있었는데, 동사무소 직원이라는 새끼가 지문을 찍어준답시고 (지금은 모르겠지만 주민등록증을 만들려면 당시엔 열손가락 모두 지문 날인을 해야했다. 정말 기분 더럽다) 그 여학생 손을 계속 주물럭거리면서 수작을 걸고 있었다. 당황한 여학생은 얼굴이 빨개져서 그 새끼의 수작에 단답형으로 답을 하고 있었는데.. 보고 있자니 뭔지 모르는 감정에 복받쳐서 한창 미성년자 성추행 중인 그 개새끼한테 한마디를 던졌다. "저기 농담 그만 하시고 빨리 하시죠. 저희도 좀 바쁜데.."
새파란 어린 놈한텐 한마디를 들은 동사무소 직원은 얼굴이 붉어져서 나를 꼬나봤고, 아들내미가 나랏일 하시는 분께 대드는 현장을 목격한 아머니는 기겁을 해서 나를 말렸다. 나는... 뭐 나 역시 그 새끼를 꼬나보고 있었나? 아님 찌그러들었나... 암튼 저런 국민을 농락하는 공무원들은 다 씨를 말려야 한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세월이 흘러.. 이제 민영화가 무슨 의미인지.. 공기업에서 하는 일을 사기업에 불하하는 것이 어떤 구린 뒷사정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이 주장하는 경쟁력이 사실 노동자의 고혈을 쥐어짜내는 것이라는 걸 대충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민영화에 대해 거부감이 없는 것을 딱히 지탄을 하기 싫은 이유가 저런 데 있다. 사실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들이나 그 이후 산업화를 겪은 베이비 부머들 입장에서 봤을 때, 그동안의 정부, 관청이 얼마나 권위적이었던가? 사실 권위적이라는 표현도 너무 순화된 것이고, 술 취해서 정부 욕하는 사람들을 비밀경찰이 잡아가서 고문, 감금하고, 조금이라도 새로운 형식의 예술작품은 모두 검열을 통해 매장시키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강요하고 학생들에게 강제적으로 군사훈련을 시키던 정부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민영화를 통해서 그런 나랏일 한답시고 목에 힘주던 사람들이 백화점 직원처럼 상냥하게 서비스를 한다니 이게 무슨 호사란 말인가? 그런 사람들에게 민영화가 얼마나 나쁜지를 설명하는 것은 소 귀에 경을 읽는 꼴이다. 아니.. 이란의 회교정권의 폭력을 피해 망명한 사람들에게 이란을 공격하는 미국이 얼마나 나쁜지를 설명하는 꼴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전쟁 세대나 산업화 세대가 몇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게 있는데, 그런 권위주의와 폭력정권의 역사를 두려워하고 공공기관, 공기업을 비난하지만, 실제 당신들이 찬양하는 경제성장이 국토건설단 등 그런 권위주의 폭압정치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것, 그래서 아이러니하게 그런 권위주의 정치 (한국식 민주주의?)의 대표격인 박정희를 아직도 추앙하고 있다는 점. 그래서 그런지 당신들 역시 젊은 세대들에게 매우 권위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점이다. 또한 당신들의 노력으로 보릿고개가 없어지고 조금이라도 잘살게 된 것처럼. 당신들이 싫어하는 그 권위주의를 물리치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얻은 것은 당신들 이후의 민주화 세대의 피땀어린 노력 때문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세대들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사회안전망을 위해 민영화를 막으려는 것을 좌빨용공종북으로만 몰아 부치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분명히 지난 70년간 대한민국 사회는 엄청난 격동을 지나왔다. 지금 백세가 넘은 사람들은 나라를 빼앗긴 상황까지 겪었을 테고, 60-70 대 산업화 세대들에게 조차도 그동안의 사회 진보의 역사를 따라 잡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권위주의 정권의 폭력에 가장 극심하게 시달려 온 산업화 세대들이 원하는 나라가 다시 권위주의 정부로 회귀하는 것이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이건 뭐 매 맞는 아내 얘기도 아니고...
이민을 온 후, 가능하면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일희일비 안하기로 했었다. 한국에 있을 때에도 무슨 선거가 되었든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민주당 보다는 대안 정책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 정당을 지지했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 만큼은 신자유주의가 어떻든, 비정규직이 어떻든 간에 반드시 시대착오적인 권위주의 정권을 먼저 없애야 한다고 바랬었다.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 협박반 설득반으로 야당에 투표하기를 종용하기도 했는데, 이는 한국에 살 때도 한번도 한 적이 없는 일이었다. 지난 5년간 한국의 민주주의는 명백하게 과거로 회귀했다. 수많은 언론인들이 듣기 싫은 말을 했다는 이유로 직장을 잃었고, 영화인들이 작품이나 행사에 국가지원을 받기 위해서 자신의 작품이 진보적 성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많은 대기업들이 중소기업들과의 관계에서 초우월적 지위를 휘둘렀고, 그보다 더 나아가서 많은 외주물량이 자사 계열사로 돌려졌다. 나꼼수나 트위터 같은 곳에서 얻은 정보가 아니라 실제 내 선배나 친구들에게 일어났던 일이다.
독재자의 딸이 집권에 성공함으로써 앞으로의 전망을 더욱 암울해보인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시장친화적, 신자유주의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박근혜의 불소통, 권위주의 성향에 의해 더욱 쉽게 진행될 것같다. IMF 이후 가속된 청년실업과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의해 권위주의 정권의 폭력에 대항하는 청춘들의 저항운동은 쉽게 조직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끼리끼리 넷상에 모여서 와글와글 뒷다마 까는 것을 "소통"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사회변화의 단초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트위터 등 SNS의 발달이, 운동의 물리적 결집에 또 다른 방해 요소가 되고 있다... 그리고.. 아.. 민영화.. 자기 사욕과, 자신과 친한 1%의 이익을 위해 나라 전체를 팔아 먹고 있는 이명박의 화려한 선례를 박근혜가 마다할 리가 없다. 이미 시작한 철도, 교통부터 시작해서, 상.하수도, 전기, 공원 나아가 경찰력이나 의료시스템까지, 겉보기에는 국민이 고객으로 대접을 받겠지만, 얼마 안되어 자신들의 생존조차 독점기업들의 장삿감이 되는 시대가 올 것 같다. (뭐 예전에도.. 돈 밀리면 전기, 수도를 끊기고, 파업하면 기업에서 검,경찰 동원해서 노조를 작살내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사건이었으니, 한국의 기존 공기업, 공공기관 들이 서민의 편이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더라 하더라도 민영화는 마치 폭력남편을 내쫒고자 동네깡패를 집에 들이는 셈이 되겠다)
우는 아이 뺨 떄리는 짓 같아서 입을 다물고 싶었다.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한 이상 무슨 말을 하든, 사치스러운 투정으로 들리거나, 강 건너 (우아하게) 불 구경 하며 품평해대는 밤의 주둥아리 정도로 밖에 취급받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뒤로 한 채, 심정적으로 나마 민주당에 지지를 보낸 것이 너무 부끄럽기도 했다. 근데.. 너무 안타깝다. 안타깝고도 안타깝다. 내 부모님과, 내 누이와, 내 조카와, 내 친구들과 그들의 아이들이 앞으로 몇 십년간 더 살게 될 나라가, 이렇게 역사적 퇴행을 하게 된 것이 안타깝다. 한국국적을 포기해서 투표를 못하게된 것이 너무 분하고 미안했다.
처음에는 박근혜에게 표를 몰아준 것으로 보이는 특정 지역이나 특정 세대들이 원망스러웠다. 노인들이 전쟁을 일으키면 젊은이들이 전장에 나가 목숨을 잃는다고, 자신이 다 갚아 내지 못할 선택을 한 산업화 세대들이 미웠다. 하지만 곧이어 스스로의 의지로 국적을 포기한 나로서는 걱정을 할, 원망을 할 자격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게다가 모든 국가 기반 산업을 차근차근 민영화해대고, 집 값 폭등으로 젊은 층의 주거비용을 천정부지로 높히고, 끊임없는 비정규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만들고 있는 캐나다 보수당의 집권을 9년 동안 용인하고 있는 입장에서 (플러스 2014년 까지), 이번 선거에 대한 더이상의 절망은 한국에서 5년 더 고충을 겪게 될 가족이나 친지들에게도 무례한 일이지만, 나와 같이 캐나다에서 살면서 캐나다 정치에 대해 고민하는 이웃들에게 더 무례한 일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 이곳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바꾸려고 나름 투철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고민을 서구 젊은이들의 겉멋든 방황 정도로 빈정대고 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이 블로그는 이제 더 이상 업데이트가 없습니다. 그 동안 와주시고 덧글 달아주신 모든 분께 감사 또 감사 드립니다.